역사를 통해 배우는 영어

우크라이나 역사 - 유로마이단(Euromaidan)

@#$%&! 2022. 2. 2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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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사 영어에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오늘은 우크라이나 역사의 한 면을 보려 하는데, 바로 유로마이단(Euromaidan)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유로마이단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관련 영어 단어도 알아보도록 하자.

 

◇ 역사를 통해 배우는 영어 단어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조금의 관심만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관련 있는 영어 단어들도 알아갈 수 있다. 

 

◆ 우크라이나 역사 - 유로마이단(Euromaidan)

 

러시아가 2014년 2월 크림 반도를 무력 병합하고, 이어 2014년 4월 돈바스 지역에서도 친 러시아 세력이 내전을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것을 각각 크림 분쟁, 돈바스 내전이라고 부른다. 크림 분쟁과 돈바스 내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로마이단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나 글이 많이 보이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오늘 알아보도록 하자.


2022.02.26 - [역사를 통해 배우는 영어] - 러시아 우크라이나 분쟁 역사 4 - 크림반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분쟁 역사 4 - 크림반도

오늘도 역사 영어에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오늘은 이전 시간에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역사 네 번째 시간으로, 크림반도에 대한 내용으로 포스팅해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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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6 - [역사를 통해 배우는 영어] - 러시아 우크라이나 분쟁 역사 5 - 돈바스 사태(돈바스 내전 - Donbas(s) Civil War)

 

러시아 우크라이나 분쟁 역사 5 - 돈바스 사태(돈바스 내전 - Donbas(s) Civil War)

오늘도 역사 영어에 방문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늘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분쟁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시간으로 오늘의 중점은 돈바스 사태(돈바스 내전 - Donbas(s) Civil War) 관련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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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마이단(Euromaidan)이란?

 

크림 분쟁과 돈바스 내전 이전 2013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발생한 시위의 명칭이다. 이때 유로는 아시다시피 유럽을 의미하고 마이단은 광장을 의미한다. 

 

우리도 광장 시위 문화는 익숙한 민족이라 그런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무튼, 우크라이나어에는 광장을 나타내는 단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플로슈차이다. 

 

그런데 플로슈차라는 단어는 러시아어와 닮아있어 이때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마이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만큼,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보여준다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 관련 영어 단어

square이라는 단어가 있다. square의 어원은 라틴어 quadra이다. quad는 4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면 좀 이해가 빠를 듯한데, 당시 quadra의 그림은 사각형이다. 

이 그림에서 square는 (정) 사각형의 의미를 지니고, 사각형은 의미 확장하여 광장이라는 의미도 생기게 된다.  

 

◈ 유로마이단(Euromaidan) 발생 배경

 

그러면 이제 유로마이단(Euromaidan) 시위가 발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진다. 무슨 이유였을까? 시위 발생 시점의 우크라이나 정부는 친 러시아 정부였다. 

 

여기서 잠깐 알고 가야 하는 것은, 우크라이나는 서쪽 지역은 서방을 지지하고, 동쪽 지역은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이럴 수밖에 없었는데, 자세한 사항은 위의 링크 글을 참조해 주시면 좋겠다. 

 

아무튼, 이때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연합 가입을 포기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증진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인들, 자세하게는 서방을 지지하는 우크라이나 인들은 이것에 반대한다. 

 

이 반대가 시위가 되었고 이것이 유로마이단(Euromaidan)이 발생하는 배경이라 볼 수 있겠다. 

 

◈ 유로마이단(Euromaidan) 진행과 결론

 

이렇게 시위가 진행이 되고 상황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까지 진행된다. 그리고 11월 30일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인 베르쿠트가 시위대를 공격한다. 

 

이 모습이 생방송되면서 우크라이나 인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12월 1일 키예프에서 대규모의 시위가 발생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와 러시아가 두려움을 느끼는 사건이 발생한다. 

 

12월 8일 당시 키예프에는 소련의 레닌 동상이 있었는데, 시위대가 레닌 동상을 박살 내버린다. 그만큼 시위가 격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친 러시아 정부의 대통령 야누코비치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판단 서방과의 협상을 재개한다고 공표한다. 그렇게 시위대는 다시 흩어지는데, 문제는 이때 야누코비치가 갑자기 계획을 철회한다.

 

더 웃긴 것은 반시위법을 만들어 시위를 원천 봉쇄하려 했다. 그러자, 시위대들은 이제 시위의 성격을 넘어 반정부 운동을 보여주게 된다. 이때가 2014년이다. 

 

우크라이나 시민이라면 남녀 가리지 않고 시위에 참여했으며, 정부는 강경 대응을 했다. 당시 투석기 사용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격렬하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다. 

 

강경진압은 시위대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고 결국 대통령 집무실까지 점령한다(2월 23일). 이렇게 야누코비치 정권을 탄핵하고 친서방 과도정권을 수립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이 생긴다. 러시아는 왜 가만히 있었던 걸까? 추측이지만 대부분의 분석은 당시 소치 올림픽을 준비 중이었던 것이 제일 큰 이유라고 보고 있다. 

 

이것이 신빙성이 있는 것은 소치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바로 크림 반도 무력 병합과 바로 이어 돈바스 내전까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렇게 유로마이단(Euromaidan)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중요한 내용만 요약해 알려드리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현사태 이해하시는데 조금의 도움은 되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고 다른 역사 이야기로 돌아오려 한다. 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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